블루종 치에미, 프로이트의 <유머>??

저희가 교육프로그램으로 사용하는 개그코너 중에 <김선생>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홍대에서 정기공연 중인 <당신이 주인공>에 등장하는 코너입니다. (원작자는 KBS 공채개그맨 김지환씨라고 들었습니다.)
이 코너는 얼굴에 수염을 그리면 신분이 변한다는 설정으로 학교를 배경으로 진행합니다. 수염을 그리면서 학생 -> 일반교사 -> 교장선생님 -> 이사장님 -> 교육청장님 -> 대통령으로 신분이 계속 변하며 서로 복수를 하는 내용으로 웃음을 줍니다.

 

 

얼마 전 모 청소년 단체의 기획으로 모 학교를 찾아가 체험학습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청소년 단체 담당자 분이 학교 선생님에게 모니터링을 부탁드렸더니…<김선생>에서 교육계 종사자 캐릭터가 웃음의 대상이 되는게 기분나쁘셨다는 의견이 왔습니다. ㅎㅎ
저는 이 코너를 학교 교육연극에서 수도없이 진행해왔습니다. 그런데 단 한번도 저에게 직접적으로 유감이나 불만을 표시하신 선생님은 없었습니다. 제가 진행한 학교의 수많은 선생님들은 <김선생>에 대해서 전혀 기분이 나쁘시지 않았던 걸까요?

 


아닙니다. 기분이 상하신 선생님들 많이 계셨을겁니다. 다만 아이들이 코너를 보면서 재미있어하는데다가 그 정도 개그 설정은 딱히 교육적으로 좋지 않을 정도는 아니니까 관대하게 넘어가 주신겁니다. 결정적으로…개그의 내용을 문제삼으면 쿨하지 못한 교사로 비춰질 수 있다는 심리적 저항도 한몫 했을겁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누군가 직접적으로 모니터링을 부탁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먼저 얘기를 꺼내면 쿨하지 못한 사람이 될것이라는 저항심리가 봉인해제되면서…”맞아 내가 생각한 불만은 정당한 것이야. 이걸 얘기한다고 해서 속좁은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야…저 개그 내용은 확실히 교육적으로 문제가 있어…교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어…”라는 심리 상태가 되었을 겁니다
(이러한 심리상태를 라캉의 정신분석학 개념인 ‘대타자’로 풀어낼수도 있을것입니다. <이솝우화 벌거벗은 임금님>에 등장하는 군중심리입니다..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ㅎㅎ)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저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논문 <유머>에서 밝힌 ‘유머의 메커니즘’이 이해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잘 이해를 못했어요 ㅎㅎ)

프로이트는 초기 저작인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농담, 희극, 유머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면서 각각은 다른 종류의 웃음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20여년 뒤에 자신의 정신분석이론을 대폭 수정하면서 후반기 정신분석 이론의 주요개념인 ‘초자아’를 등장시켜서 ‘유머’의 메커니즘을 설명합니다.
후반기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정신기관은 자아(에고)-이드-초자아로 구성됩니다. 각각의 기관이 물리적으로 구분된다는 말이라기 보다는…좀 설명하기는 어렵네요 ㅎㅎ
암튼 인간 정신기관을 구성하는 개념입니다.

 


이 중에서 초자아는 ‘양심, 죄책감’이라는 개념이 정신기관으로 발달한 것입니다. 초자아는 개인이 자라면서 겪게되는 부모님, 선생님 등의 인격체가 내면화 된 것입니다. 초자아의 발달과 작용에 문제가 된 정신병리상태에서는 극단적인 자기학대, 자기감시, 자살시도(실제 자살행위까지)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병리적으로 왜곡되어 거대화된 ‘양심=초자아’가 자아를 초토화 시켜 자아(자존감?)를 없애는 것입니다.
실제로 5년전에 스스로 세상을 등지신 제 아버님의 경우도 초자아가 왜곡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께서는 어릴적 어머니(저한테는 할머니)로부터 학대당한 정신적 외상에 평생을 괴로워하셨고, 이는 프로이트가 주장한 ‘초자아 병리 증상’과도 일치합니다. 부모가 ‘양심과 감시’라는 개념으로 개인의 정신기관에 내면화하여 비대해진 초자아의 병리적 증상입니다.
암튼…초자아의 개념적 설명은 이쯤하구요. 프로이트는 유머의 메커니즘을 간단하게 표현합니다.

 


‘관대해진 초자아’
기본적으로는 양심, 감시, 통제의 역할을 하는 초자아가 ‘상황에 따라서’ 관대해 진다는 것입니다. 관대해진 ‘초자아’가 공포에 질린 ‘자아’를 보듬고 어루만지며 안심시키는 메커니즘입니다.
“자 무서워 할것 없단다. 세상 별거 아니지? 릴렉스~”
프로이트가 예를드는 유머의 예를 볼까요? 대표적으로 사형수 유머입니다.
==월요일 아침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가 한마디 합니다. “이번주는 출발이 좋은걸~”
==추운 날 단두대에 목을 넣고 있는 사형수가 사형집행인에게 한마디 합니다 “너무 추운데 목도리좀 주세요”
사형수 유머의 공통점은 ‘관조적’이라는 것입니다. 옛날 국어 교과서에 등장한 개념으로 말한다면 ‘초극적 자세??’
사형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피식 웃음을 유발하는 이러한 심리의 메커니즘은 바로 ‘관대한 초자아’라고 프로이트는 주장합니다.

 


초자아가 가끔씩은 이렇게 관대해져야 유머도 생기고 웃을일도 생기고…결정적으로 미치지 않는 정상적인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초자아가 만약 시종일관 관대하다면 어떨까요? 양심, 윤리의 기능을 못할겁니다. 사회적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같은 병리증상은 (프로이트 식으로 표현하자면)아마도 초자아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상황일 것입니다.
자…그럼 처음으로 돌아가서 얘기를 정리해 볼까요? 교사를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 개그코너에 대해서 선생님들이 대부분 직접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신 행동은 ‘관대한 초자아’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비록 선생님들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공부하시지는 않으셨어도 교사인 자신들이 학생들의 정신기관에 ‘초자아, 양심, 감시자’로 내면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실겁니다.
학생들은, 무섭기만했던 선생님 캐릭터가 웃음의 대상이 되는 <김선생>을 보면서 ‘관대한 초자아’가 주는 선물, 즉 ‘유머’를 만끽하게 됩니다. 가끔씩의 그러한 경험은 정신적으로 건강함을 유지시켜 줍니다.
숨막히도록 통제하고 감시하고 죄의식을 주입하는 초자아는 그 자체로 정신병리 현상을 일으킵니다. 누군가는 신경증, 정신증이 발병할 것이고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의 장황한 글은, 이번에 불만을 제기하셨다는 선생님께 제가 드리는 반론입니다.

 


요즘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일본 개그우먼이 있습니다.

‘블루종 치에미’라는 개그우먼 인데요. 저는 그녀의 개그가 바로 프로이트의 유머 메커니즘인 ‘관대한 초자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개그를 잠시 설명드립니다.

 


누가 봐도 못생기고 날씬하지 못한 여자가 오피스 걸로 등장합니다. 그녀는 자신감에 차있고 그녀의 주변에는 훈남 두명이 항상 서성거립니다. 그녀는 일, 사랑 등 여러가지 인생문제로 고민하는 여자후배(쿠미짱이라는 가상의 인물)에게 명쾌하고 확신에 찬 조언을 들려줍니다.

누가봐도 못생기고 뚱뚱한데도, 예쁘고 날씬한 여성들만이 할수 있을것 같은 멘트를 날립니다.
“아, 여자로 태어나서 다행이야” (이때 정말 빵터집니다)
헤어진 남친을 잊지못해 괴로워 하는 쿠미짱에게 남자를 껌에 비유하며 이런 멘트를 날리기도 합니다.
“새로운 껌을 씹어보지 않겠어?”

 


제가 볼때 블루종 치에미는 ‘초자아’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모두가 선망하고, 닮고싶은 선배…즉 와나비 캐릭터입니다. 물론 실제 외모가 그렇지 않은데도 무턱대고 와나비 캐릭터를 강요한다는 설정이 이 개그의 핵심입니다.

그녀가 개그를 통해 보여주는 초자아는….관대함을 넘어서 살짝 망가져주기까지 하는 초자아입니다.

 


일본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그녀의 개그를 처음 보면 도대체 어디가 웃음 포인트인지 감을 잡을수가 없습니다. 일본인라고 해도 처음 본 그녀의 황당한 개그가 이해되지는 못했을겁니다.

하지만 곧 그녀의 개그에 모두가 열광하기 시작합니다.
배경음악에 정교하게 맞춰진 ‘호흡개그’, 절도있는 약간의 ‘안무’ 등이 인기의 비결이라고 누군가는 말합니다.

 


하지만 전 자신있게 주장해봅니다. 왜 웃긴지 모르지만 왠지 웃겨죽겠다는 그녀의 개그에는 ‘관대한 초자아’가 들어있는 거라고…

그녀의 개그에 즐거워하면서 우리는 미치지 않을 권리를 누리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