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철학개그콘서트

요즘 <철학개그 콘서트>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논술개그>와 취지가 비슷한 것 같은데, 내용은 솔직히 좀 어렵더군요^^
하지만, 철학의 입문용으로 삼는다면 훌륭한 책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에게는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이 책의  2장. [논리학]편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어떤 랍비가 자신이 다스리는 마을에서 법정을 열었다. 슈무엘이 일어서서 자신을 변론하며 말했다.
“랍비시여, 이작이 날마다 양 떼를 데리고 제 땅을 가로지르면서 제 곡식을 망치고 있습니다. 제 땅을 말입니다. 이건 부당합니다.”
랍비가 말했다. “옳은 말이다.”
그때 이작이 일어나서 말했다.
“하지만 랍비시여, 제 양들이 물을 마시도록 하려면 그 길 밖에 없습니다. 안 그러면 양들이 죽어버릴 것입니다. 수백 년간 그렇게 하지 않은 양치기가 없었으니, 저도 그리할 수 있어야 마땅합니다.”
그러자 랍비가 말했다. “옳은 말이야”이 말을 엿들은 청소부가 랍비에게 말했다.”하지만 랍비시여, 어떻게 둘 다 옳을 수 있습니까?”
그러자 랍비가 말했다. “옳은 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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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이라면 방금 나온 이야기가 익숙하지 않나요?^^ …바로 황희 정승 일화입니다. 랍비 대신 황희, 슈무엘-이작 대신 하인이 나온다는 점만 빼고는 정말 똑같은 얘기입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일단 아래와 같이 전제가 될만한 상황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철학개그 콘서트>에 등장하는 유머는 랍비가 주인공인걸 보니 ‘유대인 유머’에 관한 일화집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임. 이 책에는 확실한 출처가 나오지 않음.
2. 황희 정승 일화의 출처는 조선시대에 쓰여진 야사임.(일화집). 책 제목을 정확하게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실존하는 문헌인 것은 확실함.
3. 황희 정승의 이야기와, 위의 유대인 유머가 매우 똑같은 구조인 점으로 봐서 둘 중에 하나는 다른 하나를 베낀것임.(악의적으로 베꼈다기 보다는 각색에 가까움)

자 이러한 상황에서 두가지 가설이 가능합니다.

1. <철학개그 콘서트>의 저자가 골수 한류팬이라서 황희 정승의 일화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책에 황희 정승의 일화를 마치 유대인 유머인 것처럼 각색했다.
2. 황희 정승의 일화가 담긴 책의 작가(또는 편집자)가 위의 ‘유대인 유머’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황희 정승을 등장인물로 하여 재구성했다.

여러분들은 어떤 가설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는 2번 가설이 더 그럴듯 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1. <철학개그 콘서트>의 저자가 한국에 관심이 많다는 정황상의 증거가 없습니다.(물론 저자에게 물어보진 않았습니다.^^)
2. [유대인 유머]에 관련된 문헌이나 일화는 세계적으로 매우 넓게 분포하며, 특히 유럽등 서양에서는 역사시대 전반에 걸쳐 [유대인 유머]가 매우 친숙한 ‘고전’이다. (프로이트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유대인 유머를 자주 거론함)
3. 황희 정승 이야기가 담긴 조선시대 일화집은 조선시대에 쓰여진 문헌인데, 조선시대에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 유대인에 관련된 다양한 문헌이나 자료가 유입되었을 거라고 추정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4. 현재 우리가 ‘토종 유머’라고 알고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 중 상당수가 ‘유대인 유머’라는 사실.

결국, 유대인 유머가 조선시대에 특히 지식인 계층에 상당히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유대인 유머를 그대로 인용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좀 생뚱맞다고 판단해서 살짝 ‘각색’을 한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황희 정승은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매우 유명한 인물이었기때문에 각색 버젼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아닐까요? 이런 현상은 요즘에도 어렵지 않게 발견됩니다. 최불암시리즈가 대표적인 경우죠. 최불암 시리즈의 내용은 실제로 최불암씨가 관련된 사실은 아니지만, 최불암이라는 유명인을 이용해서 풍자와 파급의 힘이 커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