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우 박사 칼럼 : 개그맨 유민상과 논리학_2

지난 시간에는 개그가 논증 재구성 훈련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알아봤다. 즉, 개그는 남을 웃기려는 의도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주장(결론)’과 ‘근거(전제)’의 형식으로 재구성되기 쉬운 구조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번 시간에는 실제 개그 코너를 분석하면서 논증으로 재구성하는 연습을 해본다

지난 시간 말미에 영상으로 감상했던 <마른 인간 연구소>라는 개그 코너는 논증의 형식으로 재구성 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그 내용과 웃음코드가 논술공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필자가 논술개그 공연 소개글에서도 밝혔듯이, 개그가 논술과 융합하고 접목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개그와 논술 모두 ‘통찰의 날카로움과 표현의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른 인간 연구소>는 이러한 관점에 딱 들어맞는 내용과 웃음코드를 갖고 있다. 우선 유민상 씨가 연기하는 돼지 캐릭터 자체가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줌은 물론 매우 창의적인 캐릭터이다. 유민상 씨가 등장하기 이전의 다른 개그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던 돼지 캐릭터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탐욕스럽고 미련한 모습으로만 등장하고, 그 웃음코드도 대부분 자기비하 일색이었다. 돼지는 날씬함이 미덕인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그 뚱뚱하다는 이미지로 인해 악덕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마른 인간 연구소>의 돼지 캐릭터는 날씬한 사람만 대접받는 외모지상주의를 당당하고 날카롭게 비판함은 물론이고, 비판의 내용과 전달형식도 매우 창의적이었다. 유민상 씨가 ‘날카로운 통찰과 창의적인 표현’을 앞세워 날씬하고 예쁜 선남선녀들을 신랄하게 공격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유쾌한 뒤집어 보기’라 할 수 있다. 유민상 씨의 ‘돼지 캐릭터’는 비슷한 시기에 히트했던 김현숙의 ‘출산드라’ 캐릭터와 함께 ‘뚱보 전성시대’를 연 양대 산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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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인간 연구소>를 논증으로 재구성하면 그 날카로움과 창의성이 바로 나타난다. 우선 논거가 되는 전제들을 살펴보자. (결론은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마른 인간 연구소>의 결론은 개그의 맨 끝에 등장한다. 매회 동일하다. ‘마른 인간에 관한 미스터리 해결을 위해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할 때다’라는 주장이 결론이다.)
개그가 시작하자마자 가장 중요한 2가지 전제가 제시된다.

전제 1. 서기 2222년 지구에서 마른 인간은 멸종했고, 비만인들이 지구를 지배한다.
전제 2. 돼지가 인간의 조상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위 2가지 전제는 유민상이라는 캐릭터가 개그 코너 속에서 제시하는 주장의 가장 근본적인 근거가 되어 시청자들이 웃을 수 있는 논리적인 이유가 된다. 시청자들이 2가지 전제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장도 힘을 얻지 못할 뿐더러 웃을 수 있는 확률도 급격히 떨어진다. 논술과 개그가 모두 논증의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이때 2가지 전제의 내용이 현실적으로 사실이냐 거짓이냐를 따지는 것은 개그에는 부당한 요구이다. 개그는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상상력에 대한 기반을 두고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통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놓쳐버린 삶의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논술은 과학이나 학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전제의 사실성이 아니라 전제와 결론을 통해 드러낸 삶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다. 다만,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논리학에서 이렇게 전제의 내용과 상관없이 결론이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경우에 이 논증은 연역논증으로서 타당하다고 한다.

연역논증이란 보편적인 전제로부터 특수한 사례를 끄집어내는 논증을 말한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로부터 ‘마른 사람은 죽는다.’를 도출할 수 있다. 반면에 귀납논증은 개별적인 사례들로부터 일반화를 통해 일반적인 명제에 도달한다. ‘이 까마귀도 까맣다.’, ‘ 저 까마귀도 까맣다.’, ‘요 까마귀도 까맣다.’ 그러므로 ‘모든 까마귀는 까맣다.’

이 개그 코너의 초반 전개과정은 이러한 ‘연역논증’에 해당한다. 연역논증과 개그의 관계는 논술개그 시즌1 개그로 배우는 논리적 사고력 2_2교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마른 인간 연구소>의 초반부는 연역논증으로 시작되고 있다. 자, 이제 앞서의 두 가지 전제 외에 어떤 전제들이 더 있는지 살펴본다.

전제 3. 마른 인간들은 앉아서 다리 꼬기가 가능했다고 한다. (비만인들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제 4. 마른 인간들은 돼지를 야만적으로 다뤘다. 돼지저금통의 사용방법이 그 예이다. (비만인들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제 5. 마른 인간들이 먹던 초콜릿은 뒷면에 알 수 없는 칸이 있다. (혹시 나눠먹는 용도였을까? 비만인들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제 6. 마른 인간들은 ‘몸짱’이라는 질병을 앓았다고 한다. 몸에 ‘王’자가 나타나고 몸이 근육으로 딱딱하게 굳어간다고 한다. (비만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질병이다.)
전제3~전제6은 마른인간에 대한 조사와 유물 발굴 등으로 확보된 개별적이고 경험적인 정황들이 나열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전제들이 최종적인 결론과 맺는 논리적 전개과정은 귀납논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전제3~전제6은 모두 현재 비만인들의 상식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미스터리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즉, 현재 비만인들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정황들이 사실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귀납논증과 개그의 관계는 논술개그 시즌1 개그로 배우는 논리적 사고력 2_1교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제3~전제6에서 괄호 안의 표현들은 비만인의 관점에서 이러한 사실들이 얼마나 비상식적으로 보이는지를 제시함으로써 매끄러운 웃음 유발을 위한 논리적인 장치들이다.

이렇듯 <마른 인간 연구소>의 전반부는 연역논증, 후반부는 귀납논증이 사용되고 있다. 실제 생활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논증은 이렇듯 연역논증과 귀납논증이 복합적으로 사용된다. 논술시험의 제시문들도 대부분 복합논증이다. 연역논증 또는 귀납논증이 단독으로 사용되는 상황은 논리학 책의 예문에서나 등장한다. 순수한 연역논증이라고 알고 있는 삼단논법도 경우에 따라서는 복합논증으로 볼 수 있다.

전제 1.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전제 2. 홍길동은 사람이다.
결론. 그러므로 홍길동은 언젠가는 죽는다. 

매우 유명한 삼단논법이지만. 전제 1은 사실상 수많은 경험(사람은 결국 언젠가는 죽더라)에 의해 알게 된 즉, 귀납적으로 알게 된 명제다.

다시 주제를 <마른 인간 연구소>로 돌려보자. 지금까지 나온 모든 전제를 정리해보고 결론이 도출되는 논증과정을 점검해 보자

전제 1. 서기 2222년 지구에서 마른 인간은 멸종했고, 우리 비만인들이 지구를 지배한다.
전제 2. 돼지가 인간의 조상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전제 3. 마른 인간들은 앉아서 다리 꼬기가 가능했다고 한다. (비만인들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제 4. 마른 인간들은 돼지를 야만적으로 다뤘다. 돼지저금통의 사용방법이 그 예이다. (비만인들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제 5. 마른 인간들이 먹던 초콜릿은 뒷면에 알 수 없는 칸이 있다. (혹시 나눠먹는 용도였을까? 비만인들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제 6. 마른 인간들은 몸짱이라는 질병을 앓았다고 한다. 몸에 ‘王’자가 나타나고 몸이 근육으로 딱딱하게 굳어간다고 한다. (비만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질병이다.)

결론. 마른 인간에 관한 미스터리 해결을 위해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한다.

<마른 인간 연구소>가 논증의 구조를 지니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개그이기 때문에 완벽한 논증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전제를 추가한다면 논리적으로 타당한 논증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전제를 보완하면서 좋은 논증으로 만들어가는 연습도 개그로 논술을 공부하는 장점이다.
그렇다면, 어떤 전제를 추가하면 좋을까? 일단 결론을 보자.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한다.’라는 결론을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만 하는 이유’가 전제에 제시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제시된 전제들에는 그러한 역할을 하는 전제가 없다. 즉, 결론이 다소 뜬금없이 튀어 나왔다. (물론 개그에서는 그 뜬금없음이 더 큰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두 전제를 더 제시한다면 결론이 더욱 지지를 받을 것이다.

 

전제 7. 마른 인간에 관한 미스터리는 우리 비만인들의 상식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에 이러한 미스터리들을 국가와 사회가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우리 비만인들이 지배하고 살고 있는 시대에 큰 혼란을 줄 수 있다.

전제 8. 혼란이란 사회적 악이므로 국가나 사회가 제거하거나 방지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마른 인간 연구소>의 내용을 논증으로 재구성하고 분석해 보았다. 모든 개그코너가 논증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개그코너들이 논증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 ‘남을 웃긴다’는 행위 자체가 논리적인 구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