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우 박사 칼럼 : 베르그송의 웃음론

올인고전학당 김성우 원장

<논술개그>를 처음 시작할 때, 개그로 논술적인 체험학습을 할 수 있다는 말에 많은 분들이 반신반의하는 반응을 보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공연을 관람하시고 개그가 논술공부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고 동의해주신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 논술과 관련하여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개그콘서트의 코너는 <누려>입니다. 이 코너는 박지선 씨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듯이 신들린 연기를 펼치고, 유민상 씨까지 합류하여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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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는 고된 요식업으로 고생 끝에 부자가 된 어떤 가족이 고급 식당에서 겪게 되는 ‘부적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기본 주제를 바탕으로 각각의 에피소드 마다 설정이 조금씩 바뀝니다. 예를 들어 그들이 과거에 했던 요식업이 중국집, 수산물식당, 붕어빵 노점, 숯불구이 고기집 등으로 설정됩니다. 그들이 부적응을 보이는 주 무대인 고급 식당의 종류도 매번 약간 달라집니다. 그래도 기본적인 웃음코드는 동일합니다.

이 코너에 적용된 기본적인 웃음코넌는 ‘부적응’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경직’입니다. 이 웃음코드는 논술개그 시즌1 공연에서 <김선생>이라는 코너를 통해 ‘연역논증’의 웃음코드로 언급이 된 바 있습니다. 그 이론적인 배경은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웃음]이라는 인문학 고전입니다.

베르그송은 [웃음]이라는 책에서 대단히 명확한 웃음이론을 제시합니다. 웃음은 한마디로 인간적인 것입니다. 즉, 인간을 소재로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웃는 유일한 동물이자 웃음의 대상이 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또한 웃음의 가장 큰 적은 감정입니다. 연민을 느끼는 자를 보고 웃을 수 없습니다. 연민을 괄호 속에 넣고 무관심으로 무장할 때서야 웃음을 터뜨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순순하게 지성적인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에서는 더 큰 웃음이 있을 수 있지만 더 이상 눈물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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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극도로 정서가 민감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는 웃음을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감정 이입을 할 경우 비극적으로 보이는 드라마도 무관심한 관찰자의 눈으로 보면 코미디로 바뀔 것입니다. 비극의 주인공은 인간적 개성이 드러나는 고유명사라면 코미디의 주인공은 추상화된 보통명사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웃음은 비정(非情)한 것입니다.

이러한 비정함을 베르그송은 ‘순간적인 마음의 마취(anesthesia)’라고 불렀습니다. 넘어지고 맞고 뒹구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주로 하는 개그맨을 그 부모님이나 배우자가 봤을 때는 가슴이 아프고 눈시울이 뜨거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인 마음의 마취를 한 관객은 그 개그맨이 더 가혹한 고통과 더 지독한 수모를 당할수록 더 큰 웃음을 터드릴 것입니다. 그래서 웃음은 순전히 지성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웃음은 지성에 어필하게 마련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지성은 다른 지성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웃음은 모방을 통해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킵니다. 웃음은 고독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일종의 비밀스런 공모입니다. 베르그송이 말하기를, 극장이 가득 찰수록 관객의 웃음은 더 더욱 폭발적이랍니다. 그래서 웃음은 항상 사회적인 의미나 역할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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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사회적인 기능은 사회 구성원들이 지니는 반사회적이고 분리주의적인 성향이나 태도 및 행동들을 교정하는 데 있습니다. 사회적인 삶의 움직임에는 긴장과 유연성(탄력성)의 두 가지 힘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긴장과 유연성의 두 힘의 균형이 무너질 때, 다시 말해서 ‘기계적인 경직성’이 몸을 지배하게 되면 몸은 아프게 되고, 마음을 지배하게 되면 마음은 이상해집니다.

이런 이유로 베르그송이 바라보는 웃음의 기본적인 유발 요소는 ‘기계적인 경직성이나 비탄력성(비유연성, 고집불통, 반복성, 논리적인 필연성)’입니다. 다시 말해서 ‘살아 있는 것에서 기계적인 것’이 출현하는 것을 쳐다보면 웃음이 나오게 됩니다. 반복적인 딸꾹질, 구두쇠의 돈의 정언명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집착, 긴장한 몸과 마음이 만드는 어색한 분위기, 유연한 대처가 필요한 경우에 형식적인 규칙을 고집하는 공무원의 어리석음 등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반복성과 기계적인 메커니즘이 찰리 채플린의 코믹 영화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러한 웃음 유발 요인인 기계적인 경직성은 반사회적이고 분리주의적인 것입니다. 베르그송의 말처럼 “이러한 경직성이 코미디라면 웃음은 교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습관이나 반복처럼 경직성이 사회적 삶을 저해하고 그 구성원들의 사회적 연대감을 떨어뜨린다면 웃음은 다시 이를 회복하게 하는 치료제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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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의 웃음코드에도 이러한 경직성의 반사회적인 요소와 웃음의 치료적 기능이 존재합니다. 다시 말해서 베르그송의 웃음론이 <누려>를 잘 이해시켜줍니다. 주인공들은 과거의 고생스러운 기억을 잊고 이제는 경제적 풍족함을 ‘누리고’ 싶어 하지만 과거 고생하면서 몸에 밴 습관들은 마치 조건 반사처럼 특정한 조건이 되면 일종의 강박증과도 비슷하게 ‘기계적 메커니즘’처럼 튀어나옵니다.

이 경직성으로 인해 그들이 풍요로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음이 잘 드러납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과거 역사는 풍족한 삶에 대한 학습이 전혀 없었다는 매우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잘 살게 된 그들이 과거의 코드를 새로운 시대에 맞춰 변경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반복하기 때문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고급 와인바에서 바텐더가 고급 프랑스산 와인을 권하자, 와인에 대해 전혀 모르는 그들은 ‘농수축산물은 국내산이 최고급이다’라는 일반적인 상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전혀 다른 상황인 와인에도 그들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합니다. 소고기는 횡성 한우가 최고이듯이 와인도 그러할 것으로 잘못 추론한 끝에, “싸구려 수입산 와인 말고 최고급 국내산 와인을 가져오라”며 바텐더에게 호통을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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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경직성으로 인한 사회적 부적응은 웃음을 통해 치유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웃음은 일종의 무의식과도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웃음을 유발하는 웃기는 사람만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에는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게스가 발견한 일종의 절대 반지는, 이것을 끼운 사람은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베르그송은 기게스 반지의 반대적인 효과가 웃음에 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웃기는 사람은 무의식적이다.” 이러한 베르그송 말의 의미는, 웃음은 웃기는 사람에게는 무의식적인 것이라는 뜻입니다. 자신만 자기가 웃기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죠. 비록 베르그송은 웃음에 관한 심리적인 분석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이로써 그의 코미디와 웃음에 관한 이론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안 프로이트에게로 연결됩니다.

물론 프로이트는 말과 언어를 통해 무의식에 접근하기 때문에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말로 하는 코미디인 개그 즉 농담이 주요한 분석 대상입니다. 베르그송에게 코미디와 농담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다만 농담은 아직 전개되지 않은 코믹한 장면의 핵심과 같은 것입니다.